등록 : 2007.11.05 18:10
수정 : 2007.11.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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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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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고전 <춘향전>에는 금쪽 같은 ‘작업용’ 대사가 많다. “연꽃은 비록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지만, 맑고 곱기가 비할 데 없으며, 그 향기 십리는 간다고 합니다.” 자신이 쓴 부용당 현판 아래서 춘향이 건넨 설명에 몽룡의 답이 걸작이다. “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 연꽃의 향기는 멀수록 맑고 청아하다 하였거늘, 남원 부중에 가득한 네 향기는 동헌 내아까지 실려와 나를 취해 비틀거리게 하였으니, 춘향이는 연꽃보다 더한 꽃 중의 꽃이로다.”
그러나 향원익청은 이렇게 작업용으로 쓰일 게 아니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을 사랑한 나머지, 유명한 애련설(愛蓮說)을 남겼다. 그는 여기에서 도연명이 은자의 꽃인 국화를 사랑하고, 당나라 이래 세상 사람이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사랑한 것에 비해, 자신이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진흙탕에서 피어났으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고, 그 자태 우뚝하고 고요하여/ 멀리서 지켜볼 뿐, 함부로 갖고 놀 수 없네 ….” 이 수필의 정수는 ‘향원익청’ 넉 자에 포함되어 있으니, 훗날 세상 사람은 군자의 품격으로 삼았고, 시인 묵객은 시제·화제로 삼았으며, 여러 군왕과 사대부는 정자와 누각의 이름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정자가 중국의 4대 정원 중 가장 크다는 쑤저우의 졸정원,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원향당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조가 조성했다는 경복궁 안 향원지와, 고종이 그 안에 인공섬을 만들고 세운 누각 향원정이 있다. 저물어가는 가을, 멀리 그리울수록 더욱 향기로워지는 것들을 기억해 보자. 굳이 중국 쑤저우까지 갈 필요는 없다. 느티나무 회화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 따위가 막바지 붉음을 토해내는 향원정이면 족하다. 갈수록 펄밭인 선거판에서, 처염상정(處染常淨)이 따로 있겠는가.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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