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07 18:09
수정 : 2007.11.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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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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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미국 오리건 대학의 마이클 앤더슨과 스탠퍼드 대학의 존 가브리엘리가 19∼31살의 성인 4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두 사람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증기-기차’ ‘턱-껌’처럼 서로 관련된 36쌍의 단어를 주고 외울 때까지 보라고 했다. 그런 다음 앞쪽 단어 12개를 보여주고, 뒤에 올 단어를 몇 초 동안 기억해 보라고 부탁했다. 이어 다른 앞쪽 단어 12개를 보여주고, 이번엔 뒤에 오는 단어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 뒤 시험을 치렀더니, 기억에서 밀어내려 했던 단어들이 실제로도 기억에 조금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사람들은 경험한 것을 모두 기억하진 않는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에 남긴다. 프로이트가 심리적 방어기제의 하나로 제시한 데서 비롯된 ‘선택적 망각’이다. 선택적 망각은 무의식적으로, 하지만 정교하게 이뤄진다. 자기공명영상법(MRI)으로 찍어보면, 선택적 망각을 할 땐 뇌 속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반응은 감소한 반면 판단을 맡은 전전두피질은 뚜렷하게 활성화했다고 한다. 전전두피질은 행동을 억제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을 매개하면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곳이다.
역사 영역에도 선택적 망각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학자인 폴 리쾨르는 과거는 우리의 기억속에서만, 기억이 지시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억은 반드시 선택적 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서술이나 인식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만, 그 나쁜 사례도 많다. 일본 우익들이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것이라든지, 많은 독일인들이 종전 직후 나치 당원이었던 과거를 말끔히 잊은 것 등이 그렇다.
법과 원칙의 상징이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세번째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2002년 정계은퇴 선언과 2004년 ‘차떼기’ 사과 기자회견 때 자신이 한 말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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