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3 18:17
수정 : 2008.01.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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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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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막힌 도로에서 유독 내 차가 있는 차로만 느린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차가 빠지는 것은 항상 옆 차로다. 1999년 9월 <네이처>에 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차로별로 차량들의 평균 속도를 측정한 뒤, 운전자들에게 물었다. 평균 속도가 훨씬 빠른 차로에서 운전한 운전자들의 70%가 옆 차로보다 느렸다고 응답했다. 운전자의 시야가 앞을 향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추월한 차는 바로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자기를 추월한 차는 긴 시간 동안 시야에 남아 있어 일어난 착시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나의 손해나 남의 이익은 크게 보려는 심리적 프레임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지난해 작고한 프랑스 사상가 장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의 의미를 사용가치나 교환가치가 아니라 만들어진 기호가치로 결정한다고 보았다. 내게 어느 정도 필요한지 쓰임새를 따져 냉장고를 사는 게 아니라 “… 라서 행복해요”라는 광고문구가 만든 가상의 이미지에 돈을 쓴다는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을 느끼지 않고 계속 결핍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현대 이미지 이데올로기의 한 축이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이미지>라는 책에서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기업은 계획된 결핍 이미지와 환상이란 그릇을 계속 만들어 내고 대중들은 기꺼이 자신 생각을 그 그릇에 담는다고 말했다. 그래야 기업들이 계속 물건을 팔 수 있고, 정치인은 다음 정권을 노려볼 수 있다.
그 메커니즘은 내게 필요한 것이 없다는 절대적 빈곤보다 남들은 가졌는데 나는 없다는 결핍감에 더욱 쫓기게 만든다. 끝도 없는 물신주의는 그렇게 탄생한다. 가난한 최요삼 선수가, 많은 것을 가지고도 항상 배고프게 살고 있는 우리 곁을 떠났다. 생전 희망대로 심장·간·각막 등 새 생명을 6명에게 남겼다. 그 복서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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