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현호 논설위원
|
유레카
로마는 애초 ‘작은 정부’였다. 제국의 번성을 이끈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를 정복한 기원전 30년까지 병력 50만명을 거느렸으나, 정국이 안정되자 곧 15만명으로 줄였다. 국방비 부담이 줄면서 재정지출 규모도 축소됐다. 그가 1∼10%의 낮고 단순한 세율을 뼈대로 하는 세제개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세제가 안정되니, 세금 누수가 줄었다. 세무기관, 곧 정부 조직이 커질 이유도 없었다.후임자인 티베리우스도 밀고와 처형을 밥먹듯 했던 독재자였지만 세금 인상만은 삼갔다. 게르만족의 내란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이들의 경계 침범은 막아 전쟁을 피했다. 재정지출 요인을 억제한 셈이다. 당시 로마가 군사·정치적으로 전성기였기에 가능했던 정책일 게다.
제정 초기의 ‘작은 정부’가 ‘큰 정부’로 바뀐 것은 국경이 크게 흔들리던 3세기 무렵이다. 황제 추대와 살해의 혼란이 거듭되던 284년, 새로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혼자 통치하기엔 로마 제국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그는 즉위 다음해인 285년 전우인 막시미아누스를 공동통치자로 삼아 갈리아 등 서쪽을 맡긴 데 이어, 293년에는 각각 부황제를 두도록 해 사두정 체제를 만들었다. 사두정 체제에선 한동안 국경이 안정되고 영토도 확대됐다. 이 즈음에는 군대 규모도 종전의 30만명에서 60만명으로 늘었다. 네 황제가 네 곳에서 각기 정부를 이끌다보니 공무원 수도 크게 늘었다. 당연히 세금부담이 커졌다. 세율 인상과 함께 특별세·임시세가 남발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악순환의 시작이기도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았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숫자를 줄이는 것 말고, 왜 지금 이런 식의 개편이 필요한지는 분명찮다. 나중에 역사가 설명해 줄 일일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