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23 20:38
수정 : 2008.01.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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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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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역사의 충신들은 무수히 많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와 목은 이색이 있고, 세조를 끝까지 거부한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도 빼놓을 수 없다. 반면 정치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신해 오랜 영화를 누린 인물도 있다. 신숙주와 유자광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숙주는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이름을 떨치다 단종 폐위와 세조 즉위에 큰 공을 세워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권세가 성종 때까지 6대에 이어졌다. 세조가 실권을 장악한 뒤 정난공신, 세조 즉위 후 좌익공신에 올랐으며, 예종 때 익대공신, 성종 때 좌리공신 등 무려 네 번이나 공신 자리에 올랐다. 그는 ‘단종이 아직 어리고 상황이 불안했기 때문에 왕권 강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섰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유자광은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계기로 발탁됐다. 예종 때 남이 장군의 역모를 평정해 익대공신이 됐으며, 연산군 때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무오사화를 일으킨 주역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중종반정에 참여해 오히려 연산군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고, 다시 정국공신이 됐다. 5대 임금에 걸쳐 영화를 누린 셈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직 장·차관들이 눈에 많이 띈다. 강만수 전 재정경제원 차관,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최재덕 전 건설교통부 차관 등 무수히 많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노무현 정부의 각료였던 사람들도 있다. 압권은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다. 그는 19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외환위기를 불러온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을 다녀와서 시장경제론자로 변신하더니 금감위원장이 됐다. 임기 말엔 금산분리 완화를 소신이라고 외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인수위원회에 얼굴을 드러냈다.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거론된다. 관치금융의 장본인이 시장경제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가 될 판이다. 뛰어난 변신술에 감탄할 뿐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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