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28 20:11
수정 : 2008.01.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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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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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80년 1월 서독에선 새로운 정치실험이 시작됐다. 68혁명 세대들이 반전·평화·반핵·환경·여성·소수자·풀뿌리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내건 녹색당을 결성한 것이다. 250여 시민사회 단체들이 참여했고, 사회민주당 좌파도 가담했다.
녹색당은 그해 지방의회 선거에 풀뿌리 정치의 발판을 마련하고, 1983년 연방의회 선거에선 5.6%의 득표율로 27명을 의회에 진출시켰다. 청년, 지식인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서 녹색당은 1998년 총선에서 6.7%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1당인 사민당과 이른바 적-녹 연정을 출범시킨다. 녹색당 원칙주의자들은 녹색의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연정에 반대했고, 사민당 우파 역시 개량주의적 시민운동과의 결합이라며 반대했다. 논쟁은 녹색당 창당 주역인 페트라 켈리가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심각했다.
연정 결과, 녹색당에서 요슈카 피셔 등 3명이 외무·환경·건강부 장관으로 입각했고, 유럽에 녹색당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레 베르’, 네덜란드의 ‘데 흐루넨’, 캐나다의 ‘그린 파티’ 등이 속속 탄생했다. 적-녹 연정은 2002년 선거 이후에도 계속됐고, 녹색당은 이를 통해 환경세 도입, 핵발전정책 전환, 재생가능에너지법 제정 등을 실현시켰다.
개량주의 혹은 회고주의 논란 속에서 서로 경원하던 노동(적색)과 환경(녹색)이었지만, 지구적 차원의 변화에 따라 적-녹 연대는 대세가 되고 있다. 지구온난화, 수평적 착취구조와 양극화, 자원 약탈과 국제분쟁 등의 문제를 생산력 발달과 계급독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까닭이다.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녹색혁명과 광범위한 연대가 요구되는 것이다.
엊그제 민노당의 일파가 ‘더 적색으로, 더 녹색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나섰다. 적색과 녹색의 화학적 결합으로 정체된 진보운동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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