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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6 19:41 수정 : 2008.02.26 19:41

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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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산업을 거론할 때면 항상 미국을 떠올리게 된다. 1903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신화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상업 비행은 독일에서 시작됐다. 1910년 6월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질 때까지 4년여 동안 7대의 비행선으로 프랑크푸르트와 인근 도시를 연결하는 셔틀(정기운항) 노선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도는 전투기와 조종사들 덕분에 비행기 산업은 급속히 발전했다. 역시 독일이 가장 빨랐다. 전쟁 직후인 1919년 2월 데엘에르(DLR)라는 회사가 베를린~라이프치히~바이마르를 연결하는 상업 여객운항을 시작했다. 이어 영국이 같은 해 8월 런던~파리 노선을 개설함으로써 국제 항공셔틀의 역사가 마련됐다.

정치에서 셔틀외교란 말을 만들어낸 주역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다. 1970년대 초반 아랍과 이스라엘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양쪽을 오가며 중재자 노릇을 했던 게 셔틀외교의 시초가 됐다. 이후 셔틀외교란 용어는 외교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양쪽 정파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지만 서로 대화의 필요성을 느낄 때 제3자가 양쪽을 오가며 대화를 성사시키는 방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취임과 동시에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셔틀외교를 복원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셔틀외교는 원래 뜻과는 전혀 다르다. 1년에 한 번씩 상대 나라를 오가며 정례 정상회담을 열자는 취지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2004년 합의했다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2005년 이후 중단된 것이다.

이번에는 일본의 의지가 강해 보인다. 전·현직 총리 등 100여명이 취임식에 왔다. 그러나 신뢰 구축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두 나라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항상 일본 정치인들의 돌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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