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0 20:12
수정 : 2008.03.1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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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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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가진 것을 모두 사람에게 주고 가는 게 소다. 힘으로는 논밭을 갈아 먹을거리를 장만해 주고, 몸으로는 귀한 음식이 되어 기운을 북돋워 주고, 뼈로는 곰탕, 가죽으로는 신발과 옷이 되어준다. 무엇 하나 사람을 이롭게 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사람의 배은망덕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벽창호에 우이독경이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미련 한 사람을 뜻하는데, 비유 대상이 모두 소다.
평안북도엔 벽동과 창성이란 곳이 있었다. 소가 좋기로는, 지금이야 횡성·청도·장성 등 여러 곳이 꼽히지만, 예전엔 벽동·창성이 유명했나 보다. 그런데 이곳의 소는 제 힘만 믿고 제멋대로 굴기 일쑤였다고 한다. 말귀는 막혀 있지, 힘은 세고 고집불통이니, 주인도 다루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소를 부리는 소리가 지방마다 달랐으니, 외지인에게 비친 벽동·창성의 소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놈이었다. 거기서 나온 말이 ‘벽창우’다.
지금의 벽창호는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하기 편하게 바뀐 것이다. 고집 세며 완고하고 우둔하여,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옥에선 창을 내고 친 바람벽을 벽창호라고 한다. 앞뒤가 꼭 막혀 도무지 융통성이 없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절벽 같다고 하는데, 벽창호의 쓰임과 상통한다.
하지만 소가 모든 것을 바쳐 사람을 살리듯,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건 소처럼 우직한 이들이다.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인 박재승 변호사에게 정치인들이 붙인 별명이 벽창호다. 빈정거리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 벽창호 앞에서 그를 빈정대던 이른바 정치 9단들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진다. 그의 힘은 상식과 염치, 헌신에 근거한 원칙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보다 비상식·몰염치·이기심으로 가득 찬 벽창호가 더 많다. 어떻게 배를 산으로 끌고 가랴 싶지만, 이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한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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