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2 20:00
수정 : 2008.03.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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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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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프로 바둑기사 이상훈 6단은 유망주였다. 15살에 입단해 비씨카드 신인왕전에서 우승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재기발랄, 자유분방한 기풍이었고, 전투력이 강한 대마 킬러였다. 그러나 동갑인 돌부처 이창호의 벽 앞에서 거듭 좌절을 겪어야 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하면서 더 비범한 재능을 지닌 초등학교 2학년의 막냇동생 이세돌을 고향인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데려왔다. 자신이 지도사범으로 일하던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스파르타식 맹훈련으로 여덟살 아래 동생을 단련시켰다. 아버지만큼이나 헌신적이었다. 자신의 승부보다 동생의 입단을 우선했던 그는 1995년 12살의 동생이 3전4기 끝에 입단한 이틀 뒤 기쁜 마음으로 입대했다. 이제 그는 비공식 세계랭킹 1위라는 이세돌 9단을 보살피는 후견인으로 더 유명하다.
조상연 5단의 기재(棋才)도 특출했다. 1956년 15살 중학생으로 프로기사가 됐을 때는 ‘바둑천재 등장’으로 대서특필됐다. 50∼60년대를 석권했던 삼촌 조남철의 아성을 무너뜨릴 사람으로 두 살 아래 김인보다 조상연이 더 앞에 꼽혔다고 한다. 그런 김인은 70년대 중반까지 10여년간 ‘김인 시대’를 풍미했지만, 정작 조상연에겐 전성기가 없었다. 대신 그는 62년 6살이던 막냇동생 조치훈의 손을 잡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를 키우는 데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그에겐 국내 기계를 대표하는 것보다 세계를 제패할 재목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했다. 동생 조치훈 9단이 11살에 입단해 일본과 세계 바둑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동안, 그는 아버지처럼 열다섯 살 아래 동생을 돌봤다.
이상득 국회 부의장은 13대 때 국회에 들어왔다. 14대 때 등원한 여섯 살 아래 동생 이명박 대통령보다 정치 경력이 더 오래고, 또 탄탄하다. 신망도 두루 두텁다. 지금 그는 한나라당 물갈이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여권 내 세력다툼의 한 축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는 형의 구실로 뭘 생각하고 있을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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