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13 20:06
수정 : 2008.03.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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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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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작품성에 무게를 둔 많은 수작들이 전면에 등장한 올해 아카데미상에서 대니얼 데이루이스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그는 미국 석유개발 시대에 석유를 둘러싼 한 인간의 야망과 탐욕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광기’로 풀어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회사 이름 하나가 등장한다. 1870년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오일이다. 이 회사는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유통되는 전체 석유의 85%를 장악하고 세계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설립 초기 록펠러의 야심은 이미 세계시장에 닿아 있었지만, 해외 수요가 많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석유램프였다. 석유램프를 대량으로 만들어 각국에 무료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뿌린 석유램프에는 ‘아시아의 빛’이라는 문구도 새겨 넣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전 세계 석유시장을 장악해 갔다. 초창기 미국 전력회사들이 전기 소비를 늘리기 위해 백열등이나 전열기를 무료로 나눠줬던 것도 록펠러가 남긴 아이디어였다. 요즘 프린터 업체들은 프린터를 싸게 팔고, 비싼 잉크로 돈을 번다.
휘발유 1ℓ에는 23t의 유기물이 아주 독특한 환경에서 100만년 동안 변형을 거쳐야 하는 조건이 들어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이 한정된 자원의 4분의 1을 소비한다. 당연히 세계시장 가격은 미국 경제와 직결된다. 미국 경제가 나쁘면 수요가 줄어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요즘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는 유가 움직임은 제멋대로로 보인다. 부실한 미국 경제는 계속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린다. 흥미를 잃은 투기자본들은 이를 피해 대거 원유시장으로 몰린다. 유가는 다시 올라가고, 아픈 경제는 증세가 심해진다. 경제를 살리려 금리를 낮추면 달러 가치는 더욱 떨어진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스스로 키운, 이 거친 자본주의 풍랑 한복판에 조그만 나뭇잎처럼 우리가 있다.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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