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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5 21:17 수정 : 2008.05.05 21:17

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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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1930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태어나, 광복과 함께 귀국해 마산중학교에 편입했고, 5학년 때 유치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서울대 상과대 수료 후 시작과 평론 활동을 하다가 64년 김현옥 부산시장 밑에서 잠시 공보비서로 일했다. 67년엔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 값으로 100원 500원씩 받았다는 이유로 동백림 간첩단에 연루됐다. 중앙정보부에서 3개월여 전기고문 등을 받으며 ‘진실과 고통 가운데 어느 것이 강한지’ 가늠해보기도 했다. 그 후유증으로 행려병자가 되어 시립병원에 방치되었다. 72년 친구 동생과 결혼해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 터를 잡았고, 93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그의 하늘로 돌아갔다.

이력이 이러한데, 안면도에 천상병 고택이라니! 안면읍을 거쳐 영목 쪽으로 가다보면 세거리가 나오고, 즐비한 이정표 사이에 ‘천상병 시인 고택’ 표지가 있다. 천수만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작은 언덕 위에 옛집 하나가 있다. 열 평이나 될까, 시멘트 벽돌을 쌓고 그 위에 슬레트를 올려 방 셋을 만들었다. 1자형의 전형적인 도시빈민 가옥이다. 장모와 처제도 함께 살았으니, 부엌도 없이 방만 들였다. 가운뎃방 앞에 낸 연탄 화덕이 취사와 난방용이다. 두 평 남짓한 중간 방엔, 문학지와 원고지가 올려져 있는 앉은뱅이 밥상이 있다. 방문객들이 찔러놓은 1000원짜리는 막걸리 값인가 보다.

시인처럼 집도 떠돌이 신세다. 2004년 헐린다는 소식에, 안면도의 한 농사꾼이 지붕과 문틀 등을 옮겨와 복원했다. 초라한 탓일까. 천상병 예술제를 도시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랑하는 의정부시마저 외면했다. 어제 5회 예술제가 끝났다. 이전보다 더욱 다채로웠다. 그러나 시어만 있고, 이를 빚어낸 가난과 고통이 없었으니 절름발이였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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