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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4 20:01 수정 : 2008.05.14 20:01

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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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는 제2차 세계대전, 케네디 암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예언했다고 해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가 예언서 <세기>에서 3천 가지가 넘는 예언을 했다는 점은 흔히 간과된다. 하나하나 따져 정확성을 평가하면 보통 사람의 예언이 우연히 맞는 경우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지도자가 예언자일 것까진 없지만 선견지명은 필요하다. 리더의 안목에 조직의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견지명은 더 깊이 더 멀리, 그리고 더 정직하게 보는 데서 나온다.

과거에는 없고 현재에만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다. 현재에만 존재하는 결과론적인 지식이 과거에도 존재했던 것처럼 착각하고 ‘내 그럴 줄 알았지’,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을 선견지명에 빗대 후견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지만, 두어 달 전 취임 당시만 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경향이 있다. 후견지명의 부작용은 사후에는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결과에도 좀처럼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라는 결과에 놀라지 않았으면, ‘가’에 반대되는 결과에는 놀라야 한다. 그러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그 어떤 상황도 결코 놀랍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당연시하며 그 일이 처음부터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할 때, 우리는 ‘현재 프레임’의 희생양이 된다. 어떤 일이든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되겠지만, 그것은 현재 프레임이 만들어낸 그럴싸한 포장일 뿐이다. 여당이 민심수습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러이러했기 때문에 저러저러했다’는 진단이 제법 활발히 나돈다. 그렇지만 후견지명에 머문다면 물에 떠내려가는 죽은 고기나 다름없다. 살아 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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