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19 20:41
수정 : 2008.05.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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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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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옛소련 스탈린 치하에서 농생물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환경조건이 바뀌면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나며, 이렇게 획득된 형질은 유전된다는 이론을 주창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과학적 근거가 되기도 했던 이 이론은 소련 공산당에 의해 프롤레타리아의 학문으로 공인됐다. 반면 정통 유전학은 부르조아 학문이라는 낙인을 받아 학계에서 숙청됐다. 권력이 된 리센코는 자신을 비판하는 학자까지 처형하기도 했다. 과학계는 이후 이념에 의해 과학과 지식이 억압당하거나 조작되는 현상을 리센코이즘이라 했다.
리센코이즘은 한때 소련을 비웃는 하나의 상징이었지만, 사실은 중세의 지동설 재판처럼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크리스 무니는 <과학 전쟁>에서 리센코이즘의 미국적 버전을 상술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레이건 대통령 때 일부 주에선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을 중고교 교재에 포함시켰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낙태 금지를 옹호하는 차원에서 낙태가 정신병이나 유방암과 관련돼 있다는 연구를 후원했다. 석유 메이저의 이익을 위해선, 온실가스와 기후온난화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연구를 지원했다. 크리스 무니는 이렇게 “정치적 이유나 이념적인 이유 때문에 과학적 과정이나 과학적 결론이 부당하게 손상당하거나 변경되는 것”을 과학의 정치화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그 좋은 실례는 황우석 사태다. 요즘 미국산 쇠고기나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정부가 동원하는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자인 수의과학검역원장은 광우병 소라도 위험물질만 제거하면 날 것으로 먹어도 안전하다고 주장했고, 식약청장을 지낸 서울대 교수는 5년 이내에 광우병은 사라진다고 큰소리를 쳤다. “과학은 다른 영역과 비교해 전혀 순수하지 않으며, 과학자들도 성공하려면 처세술이 필요하다”는 니컬러스 웨이드(<진실을 배반한 과학>의 저자)의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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