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04 19:41
수정 : 2008.06.0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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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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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600쪽 가깝게 딱딱한 내용이 이어지는 <9·11 조사보고서>는 베스트셀러다. 2004년 7월 발매 일주일 만에 30만 부가 팔려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경영 쪽 전문가들도 이 책에 열광했다. 그들은 이 책이 잘못된 조직문화의 해악을 제대로 다뤘다고 평가한다.
보고서는 9·11 테러를 막을 기회가 10차례쯤 있었다고 분석한다. 테러리스트들이 훈련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고 전한 미 연방수사국(FBI) 현장요원의 보고라든지, 테러 직전인 2001년 8월의 “빈 라덴, 미국 내 공격 결정했음”이라는 메모 등 내부 경고도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조직 전체로서 그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정부 내 ‘정보공유 실패’, 그리고 그런 초유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못한 수뇌부의 ‘상상력 부족’ 탓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2003년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표절 및 기사 날조 스캔들 뒤 <뉴욕 타임스>가 내부 진상조사를 거쳐 내놓은 보고서 ‘왜 우리의 저널리즘은 실패했는가’도 통렬한 자기반성이다. 보고서는 블레어가 이미 여러 차례 문제점을 드러냈음에도, 그런 사실이 다른 간부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런 ‘소통 실패’의 원인을 의욕에 가득 찬 편집인 하웰 레인스에게서 찾았다. 그가 부장 등 중간 관리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주하면서 자신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를 굳혔고, 그 때문에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쇠퇴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00일 만에 곤경에 빠진 이유는 여럿일 게다. 그 자신의 개인적 문제 말고, 보좌 및 실행 조직인 청와대와 내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이들 조직 안에서도 위험을 감지하고 걱정한 이들은 있었다. 전달되고 공유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 이전에 내부 소통에서부터 실패한 셈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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