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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2 20:11 수정 : 2008.06.22 20:11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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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그랬다. 노동으로 파김치가 돼 천둥 같은 코골이를 하고도 새벽녘에 일어나 아들이 깰까 숨죽여 도시락을 싸셨다. 젓가락질이 시원찮으면 곧바로 ‘찬거리 개선’에 골몰하셨다. 먹을거리는 어머니 걱정의 절반 이상이었고, 잔소리의 절반 이상도 ‘건강한 식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추진했다며 뼈저린 반성을 밝혔다. 한국이 처한 여러 난관을 한참 설명한 직후에 이런 반성이 나왔다. 대통령은 취임 초에 변화와 개혁의 조급함이 있었고, 고유가 경제의 어려움 속에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한 기대가 컸고, 안보를 위해 한-미 관계 회복도 급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다 보니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 자신보다도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마음’이란 말이 마음에 걸린다. 사실 어머니 못지않게 많은 아버지와 대학생·청소년이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도 선택된 ‘어머니의 마음’은 감성적 화법으로 들린다. 문맥으로 보면 ‘촛불 민심’을 뭉뚱그려 말한 게 분명하다.

회견문에서 촛불 민심을 어머니 마음으로 보면, 대통령은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통령은 ‘집안 어머니’가 알기 힘든 남 모를 고충을 떠안은 ‘사회인 아버지’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 현안”과 “국가 이익을 지키고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대통령은 집안 잔소리를 듣더라도 제 길을 가는 가부장의 모습이다. 국가를 걱정하는 대통령과 건강을 우려하는 민심은 은연중에 대비되고, 대통령의 ‘아버지 마음’은 변호된다. 대통령이 무의식 중에 국민을 여성성으로, 국가와 정부를 남성성으로 인식하는 건 아닌지 우려도 생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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