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6 20:35
수정 : 2008.06.2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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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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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가 된 이후 그들에게는 공통의 문제를 결정할 장소가 필요했다. 그리스인들은 그 장소를 ‘아고라’라 했다. 아고라의 어원이 말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고레베인’이라니 애초 그 기능이 소통의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아고라에서 그리스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의 문제를 토론하며 직접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투표율의 하락과 정당 불신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의 증좌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정치철학자들은 다원적이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 불일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주주의가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존 드라이젝은 이와 관련해 “민주적 정당성은 집단적 결정의 지배를 받게 될 사람들이 그 문제를 논의하는 데 깊게 참여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허용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심의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투표나 이익집단, 헌법적 권리보다 더 심의에 있으며, 심지어 자치보다 심의가 더 본질적”이라고까지 했다.
촛불시위 와중에 주목을 받은 ‘미디어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는 가상공간에서 그리스의 아고라 정신을 구현하는 마당으로 기능해왔다.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심도 있는 토론과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욕설 등 질 낮은 언급도 있지만, 시민들의 깊이 있는 의견 개진과 그에 대한 진지한 댓글들이 중심을 잡았다. 촛불시위에 나타난 아고라의 위력은 깊이 있는 참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데 있었다.
그런 아고라에 대해, 조·중·동과 그 하수인인 공권력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개시됐다. 진정한 언로를 폭압으로 틀어막으려 발버둥치는 그들의 모습은 언론 자유를 외치던 기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70~80년대의 음습한 권언유착의 과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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