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02 19:33
수정 : 2008.07.02 19:33
|
여현호 논설위원
|
유레카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8인회’는 시민 모두 무서워한 비밀경찰 조직이었다. 1378년 모직산업 노동자들의 반발을 뿌리뽑기 위해 설치된 팔인회는 메디치가의 집권 동안 크게 힘을 키웠다. 범죄방지 기관이라지만 강도나 절도 따위보다는 정치적 반대를 분쇄하는 게 주임무였다. 첩자와 밀정을 통해 정치적 불만을 탐지하고, 반대자들을 고문·처형·추방했다. 주요 교회 앞엔 자물쇠를 채워넣은 ‘탐부리’라는 나무상자를 두어 고발장을 넣게 하는 등 밀고도 장려했다. 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하고, 재판 없이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정치적 공포를 통해 메디치가의 지배를 도왔던 팔인회는 베네치아의 ‘10인회’와 함께 전체주의 경찰의 초기 형태로 꼽힌다.
일본 제국주의에는 특고, 곧 특별고등경찰이 있었다. 특고는 독립운동 등 ‘불순한’ 움직임을 탐지·색출하고, 전시체제를 공고히 하며, 사상과 이념을 통제하는 구실을 맡았다. 특고의 전통은 해방 뒤 경찰 사찰과, 특수정보과 등으로 이어졌다. 지금 정보과가 그 후신쯤 될 게다. 정보과는 4·19 직후 된서리를 맞았지만, 박정희 정권과 5공 때 전성기를 맞았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경찰은 전체주의나 권위주의와 친화력이 높다.
현재 정보과 형사는 전국에 4천명 정도 있다고 한다. 경찰청의 경우 4개 과로 편성된 정보국이 있어, 경제·사회·노동·학원·종교·문화 분야 치안정보 수집을 맡는다. 경찰은 이런 활동이 “사회안정과 국민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찰청이 ‘전통적인 지지세력 복원’을 강조한 공문을 일선 경찰서 정보과에 내려보낸 게 논란이 되자, “고유 업무”라며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일 게다. 하지만, 당하는 처지에선 ‘사찰’일 뿐이다. 실제 하는 일도 본질적으론 일제 특고와 다를 바 없다. 없어져야 할 조직이 아직도 뭐가 잘못이냐고 우기는 꼴이니 답답하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