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4 21:01
수정 : 2008.07.1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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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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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중국과 한반도에서 신목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나무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힘이 있다 하여 재판관은 이 나무를 들고 송사에 임했고, 길흉을 예고한다 하여 위정자는 나무의 변화를 살폈다. 그래서 왕과 신하가 만나는 궁궐의 외조에, 이 나무 세 그루를 심어 세 정승이 그 밑에 앉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민간에선 집안에 심으면,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나오고, 가문이 번창하며, 잡신도 범접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뿌리 깊었다. 우람한 둥치에서 가지가 멋대로 자라지만, 혼란스럽거나 번거롭지 않은 모양새가 기개 높은 학자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학자수(영어로 scholar tree)라는 이름이 붙었고, 서원이나 향교, 지방관아는 물론 사대부 집안에 이 나무를 꼭 심었다. 해미읍성의 노거수는 신유사옥 때 수많은 천주교도가 매달려 죽임을 당한 곳이어서 효수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역사의 증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 나무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고사로 우리와 친숙하다. 주인공 순우분이 괴안국의 남가군 태수가 되어 호의호식하고 살다가 쫓겨나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 보니 괴목(槐木) 밑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괴목은 회화나무를 뜻한다. 경복궁 후원이었던 청와대에도 노거수가 여럿 있다. 나무의 영험함 탓에 심기도 했겠지만, 부귀영화 권력의 헛된 꿈을 기억하라는 뜻도 있을 게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마당엔 450년 된 노거수가 있다. 이 노거수는 그동안 권력의 수많은 일탈과 방종을 지켜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이들에게 바람과 그늘과 쉼터를 보시했다. 요즘엔 촛불시위로 쫓기는 이들의 둥지도 되고 있다. 수배자들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명보다 돈을, 양심보다 힘을 숭배하고, 제 나라 백성보다 대국을 섬기는, 눈먼 정치권력의 남가일몽을 깨치도록 하는 데 이만한 곳은 없어 보인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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