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4 19:39
수정 : 2008.07.2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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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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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요 며칠 전 세계 주요언론은 라도반 카라지치의 체포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카라지치는 1990년대 유고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무슬림계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했던 인물이다. 90년 세르비아민주당 결성을 주도한 그는 2년 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유고연방에서 독립하자 세르비아인의 공화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이 됐다.
그 후 3년 동안 그의 통치지역에선 체계적인 인종청소가 이뤄졌다.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 대표적이다. 유엔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슬람계 남성들이 창고나 학교 마당으로 끌려가 약식처형됐다. 그렇게 죽어간 이들이 8000명에 이른다.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뒤 카라지치는 대량 학살과 반인도주의 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카라지치 체포 소식이 전해진 22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학살된 양민들의 신원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 5일 전인 1950년 9월 10일 미군 전투기 43대가 월미도에 네이팜탄 93개를 투하했음이 기밀 해제된 미군 문서에서 확인됐다며 “사람들이 잠든 한밤중에 네이팜탄이 떨어졌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뛰쳐나와 민간인임을 알리려 했지만 미군은 기총소사로 응답했다”는 이범기(76)씨의 증언을 전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꾸려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엔 210건 이상의 미군에 의한 대량학살 조사 요청이 들어와 있단다. 위원회의 조사로 여러 건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미국도 한국 정부도 아직 묵묵부답이다. 보스니아의 원혼들은 카라지치의 체포로 13년 만에 신원을 할 수 있게 됐지만 한국전쟁에서 억울하게 숨져간 우리 선조들은 못난 후손 탓에 5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원혼으로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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