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8 21:22
수정 : 2008.07.2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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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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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62년 10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일본 오히라 외상과 한-일 협정 각서를 교환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협정 체결에 독도가 걸림돌이라고 말을 꺼내자, 러스크 국무장관은 “독도는 어떤 섬인가”라고 물었다. “갈매기들이 왔다가 배설물을 떨어뜨리는 장소다. … 나는 일본 쪽에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자고 제안했다.”(1996년 미국 정부가 공개한 1962년 10월29일 김종필-러스크 면담록)
당시 오히라는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테니 한국이 응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종필은 ‘영토 문제이므로 국교정상화 후 시간을 가지고 해결하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종필은 1987년 13대 대선 토론회에서 “젊은 혈기에 폭파하는 한이 있어도 독도를 지키려 했다”고 말했다.
2006년 우리 정부가 공개한 외교문서에는 4차 예비회담 일본 쪽 대표가 독도 폭파를 언급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한국의 공식 견해는 독도 폭파론이 아니라 제3국(미국) 조정안이었다고 당국자들은 주장했다. 김-오히라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아, 폭파론이 누구 작품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박정희도 독도 폭파를 거론한 사실은 미국 기록에서도 드러났다.
폭파론이든 3자 조정이든 영토 주권의 포기라는 점에서는 같다. 미국이 최근 독도에 대한 기술을 분쟁지역으로 바꿨다. 일본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선언한 지 보름여 만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7월9일 한-일 정상회담 이후의 일들이다. 인터넷판에선 삭제됐다지만, 국내 언론엔 정정보도, 손해배상 청구소송, 수사 의뢰 등을 남발하는 이 정부가 일본 신문엔 너무 점잖다. 께름칙하다. 김-오히라 밀약 직후 일본 신문들은 한국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고 대서특필했었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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