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4 21:45
수정 : 2008.08.0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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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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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동물은 이기적이다. 학자들은 아픔을 느껴 제 몸을 보호하도록 한 감각세포(통점)의 존재 이유에서 그 연원을 찾기도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심을 유전자에 새겨진 태생적 코드로 이해했다. 먹이를 놓고 다툴 때나 적수를 만났을 때 그 이기심은 있는 그대로 발현된다. 개체 유지와 종족 보존을 위해 필요한 살아 있는 것들의 존재 조건이다. 그러나 그 동물적인 이기심은 필요할 때만 작동한다. 방금 배를 채운 사자는 절뚝거리며 지나가는 임팔라 새끼조차 사냥하지 않는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이기심은 최소한의 생명성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품위가 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을 원작으로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라쇼몽>은 인간의 이기심을 다뤘다. 한 남성의 죽음과 그 부인의 강간 사건을 둘러싸고, 상황에 연루된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살기 위해서다. 그나마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목격자 증언은 진실일까? 나중에 그가 현장에서 칼을 훔친 사실이 드러난다. 그가 재판정 밖에 버려져 있던 아기의 옷을 훔쳐 가기 위해 몰래 벗기는 장면에선 인간의 이기심, 그 욕망이 끝이 어디인지를 묻는다.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이기심은 추하다. 그러나 단단하다. 그 앞에서 진실이니 공생이니 나눔이니 하는 말들은 무력하다.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며 잘사는 동네에 임대주택을 못 짓게 하고, 잘사는 동네 사람들은 화답하듯 표를 몰아 그를 시 교육감으로 만드는 게 아직 우리나라다. 대통령 부인 사촌언니는 뭐가 더 부족해 수십억짜리 공천 장사를 하고 다녀야 했을까? 한 할머니는 생선과 채소를 팔아 평생 모은 재산 1억2천만원을 대학에 기탁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그 따뜻한 유전자는 추악한 이기적 세상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데운다. 그리고 아직 살아보라고 한다. 스멀거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나부터 이겨보라 한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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