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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6 19:02 수정 : 2008.08.06 19:02

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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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가 “그 사람이 평생 해놓은 일이 무엇인가. 만일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누가 알기나 했겠느냐”고 깎아내렸지만 처칠은 치밀한 현실주의자의 면모와 도박사적 기질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처칠은 ‘전쟁과 정치의 예측 불가능성’을 기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긴 인물이다.

전쟁 영웅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은 1945년 총선에서 1차 세계대전 직후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로이드 조지처럼 큰 승리를 거둘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보수당은 전쟁에서 이기고도 1906년 이래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선거운동 중에 처칠이 가는 곳마다 엄청난 군중이 모였고 열띤 환호와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보수의 대학살’로 불릴 정도로 처절한 패배였다. 보수당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참패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처칠의 보수당은 전시 연립정부를 이끌었는데, 국내 정책은 노동당이 주도했다. 전쟁 기간 중 적극적인 사회개혁 정책을 제안한 노동당의 비버리지 보고서는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전쟁 사회주의’의 경험은 노동당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크게 낮췄다. 국민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불굴의 의지와 돌파보다 재건과 사회개혁을 바란 것이다.

보수당은 그러한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만을 고집했다. 처칠의 보수당은 ‘우리 안에 사회주의자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고의 변신 노력 끝에 노동당과 유사한 정책 기조를 채택해 1951년 선거에서 신승을 거둔다.

이명박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처칠 평전을 선물하면서 의지와 돌파를 강조했는데, 전쟁에 이기고도 선거에서 진 보수당의 변신과 수용에 주목하는 게 나을 듯하다. ‘전쟁 사회주의’가 영국을 바꾼 것처럼 ‘좌파정권 10년’은 우리 사회의 기저에 거스를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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