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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8 21:14 수정 : 2008.08.18 21:14

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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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중심처 궁궐도 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민심은 천심일진대, 이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임금의 도리였다. 신문고를 걸었고, 격쟁(擊錚)도 허락했다. 격쟁은 궁궐 담 위로 올라가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억울함을 임금에게 호소하는 방식이었다. 정조는 격쟁 활성화를 위해 어가 행차 때 아예 길에서 상소를 할 수 있는 위외격쟁(衛外擊錚) 제도까지 만들었다. 가진 것 없는 백성들에게, 거리는 곧 임금이 선물한 합법적 언로였다. 정조가 화성을 오갈 때 200건이 넘는 격쟁을 처리하느라 열흘 넘게 시간을 지체했던 일화도 있다.

8월16일 새벽 역시 거리는 막혔다. 시민들은 이제 양쪽 건널목에 서 있다가 파란불이 켜지면 도로로 나와 구호를 외치고 빨간불이 켜지면 다시 반대쪽 인도로 올라갔다. 이들마저 진압한 경찰의 공격이 시작되기까지 시민들은 한 시간 동안 ‘저항 시위’를 벌였다. ‘대통령 대화해요’라는 팻말을 들고 있던 한 주부는 <한겨레> 생방송 인터뷰에서 “이제 이런 말은 하지 않겠다”며 팻말을 찢어버렸다.

다음날 청와대는 대통령이 곧 국민과의 대화를 하겠다고 알렸다. 그렇게 대화하자고 국민이 목이 터져라 외칠 땐 꿈쩍도 않더니 인간에게, 그 하나하나의 인격체들에게 동물에나 쓸 법한 ‘색소 낙인’을 뿌린 뒤 마구 잡아들이고 나서야 말을 걸었다. 그날도 거리는 잘 닫아놓고, 스튜디오는 친근하게 꾸밀 것이다. 그 안에서, 엄밀하게 선택된 그들만의 ‘선량한’ 시민들 속에서 ‘쇼’는 치러질 것이고, 그들이 거두어 간 공영방송은 이 장면을 충실하게 국민에게 전달할 것이다. 이제 거리의 시민들은 스스로 침묵을 선택할지 모르겠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문학의 물꼬를 튼 베르나르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은 이렇게 말한다. 침묵은 ‘힘으로 정복할 수 있어도 통치는 할 수 없는 영혼’의 말 없음이다. 그건 거리의 구호보다 천 배는 무섭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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