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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20 19:36 수정 : 2008.08.20 19:36

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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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조나라 염파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상경에 오른다. 한편, 인상여는 환관 우두머리 무현의 가신으로 하찮은 신분이었다. 그런데 진나라와의 외교 교섭에서 화씨벽을 온전하게 가져오는 공을 세워 조 혜문왕은 인상여를 단번에 상경으로 승진시키고 염파보다 더 귀하게 대했다.

목숨 걸고 전쟁터를 누볐던 염파는 기분이 상했다. “입 몇 번 놀리더니 나보다 더 대접받는다”며 인상여를 보면 모욕을 주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인상여는 소문을 듣고 피해 다녔다. 한번은 염파 행렬이 보이자 급히 마차를 돌려 골목으로 들어갔다. 시종들이 어떻게 대감이 피해 다닐 수 있냐며 사직을 고하자 인상여는 “염 장군과 진나라 왕, 누가 더 겁나는가”하고 물었다. 진나라 왕이라는 대답에 인상여는 말을 이었다.

“진나라 왕처럼 겁나는 사람도 내가 조정에서 가차없이 꾸짖었소. 강대국 진나라가 우리를 넘보지 못하는 것은 염 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오. 내가 이렇게 피해 다니는 이유는 염 장군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위급한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개인적인 불만은 덮으려는 뜻이오.” 얘기를 전해 들은 염파는 명예와 직위에 집착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사죄의 뜻으로 가시나무를 둘러메고 인상여의 집으로 향했으며, 조나라는 중원의 맹주가 됐다.

사기 ‘염파 인상여 열전’은 개인보다도 조직이나 나라를 앞세우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모범으로 중국인들이 높이 치는 일화다. 전근대적이랄 수 있지만 중국 문화와 전통에서 개인의 존재는 미미하며 집안이나 사회 또는 나라라는 집단 속에서 그 가치와 의미를 부여받았다.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이인호 교수는 빈발했던 천재지변과 전쟁으로 태평성대는 짧았고 개인을 앞세워 봐야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었던 험난한 역사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올림픽 개막식의 립싱크며 소수민족 분장 입장 등도 중국인들은 선공후사로 본다고 한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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