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08 21:13
수정 : 2008.09.0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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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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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72년 김준곤 목사는 강원도 춘천을 하나님의 주권이 시정 전반에 관철되는 성시(聖市)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1996년 춘천 지검장이던 전용태 장로에 의해 실천에 옮겨졌다. 전씨는 개신교도 기관장들로 홀리클럽을 꾸려 성시화 운동에 나선 것이다. 일종의 봉헌운동이다. 2007년 현재 국내 47개 도시에서 이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김 목사가 모범으로 삼은 것은 16세기 종교 개혁가 장 칼뱅이 주관했던 제네바. 칼뱅은 1536년 제네바로 초빙돼 신권정치에 기반을 둔 개혁을 추진했지만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2년 만에 추방됐다. 1541년 다시 초빙을 받은 칼뱅은 시정 전반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는 것을 전제로 이 요청을 수락했다. 그는 훗날 개혁교회의 헌장이 될 교회규정을 제정하고, 이 규정을 집행할 장로회를 구성했다. 장로회는 시민의 품행과 행동까지 단속하는 권한이 주어졌으며, 각 가정은 1년에 최소한 1번 이상 장로회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제네바에선 음악과 춤·술·극장 따위가 모두 사라졌다.
규정 위반자는 종교법원에 회부됐다. 처벌이 얼마나 가혹했던지 칼뱅 재세 4년 동안 58명이 화형 참수 혹은 교수형으로 사형됐다. 신학자 세르베토스는 삼위일체설과 관련해 칼뱅과 다른 주장을 폈다고 하여 화형에 처해졌다. 칼뱅의 동지였던, 당대의 인문학자 카스텔리오는 성서 번역에서 칼뱅과 다른 용어를 썼다는 이유로 추방됐다. 고문도 극심해, 아예 심문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법원은 물론 시의회까지 칼뱅이 장악했으니 공포정치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칼뱅의 집권이 4년으로 끝난 것은 다행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포항시 성시화 운동을 이끌었던 사람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 임명했다. ‘서울 봉헌’ 전력까지 있었으니 성시화와 관련해 그는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없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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