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10 19:58
수정 : 2008.09.1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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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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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91년 걸프전은 컴퓨터 게임 같은 공습 장면으로 기억된다. 텔레비전은 첨단 기기로 유도되는 스마트 폭탄이 이라크의 군사목표를 골라 공격하는 모습을 중계했다. 민간인들에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실은 다르다. 전쟁 뒤 미 공군 대변인은, 이라크에 떨어진 폭탄 가운데 스마트 폭탄은 9% 미만이었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정확도가 약 25%인 구형 폭탄이었다. 폭격으로 비롯된 민간인 희생이 상당기간 감춰진 것은, 전쟁 정보의 공급을 독점했던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통제’에 나선 때문이다. 실제 바그다드에선 미국의 대형 신문사 기자들이 추방됐고, 당시 부시 대통령은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직접 전화해 특파원 송환을 요청하기도 했다.
나치 독일도 정보 독점에 적극적이었다. 1941년 11월19일치 총통 지시로 10명에게만 외국 방송을 청취할 권한이 주어졌다. 허가 없이 외국방송을 들으면 사형까지 당했다.
국가권력 말고 독과점적 언론이 국민의 눈을 가리기도 한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 7월 말, 베오그라드에 폭탄이 떨어지고 프랑스의 참전이 임박했는데도 파리의 주요 일간지들은 이런 국제정세를 나 몰라라 했다. 대신 급진당 출신 전직 총리의 부인이 우익 일간지 <르 피가로>의 편집장을 총으로 쏴죽인 사건으로 지면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당시 파리의 4대 신문은 합해서 하루에 450만부를 찍었다. 전체 유통량의 75%다. 텔레비전·라디오·영화가 없던 당시의 신문은 여론 형성에 무시무시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런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정략적 보도에 빠지면서 프랑스 전체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게 됐다.
신문이 방송까지 겸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정부가 밝혔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처럼 거대 언론권력이 나올 수 있게 됐다. 그런 힘을 가지게 되면 불편한 진실은 가로막고 보여주지 않으려 할 게다. 그런 예는 무수히 많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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