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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17 19:23 수정 : 2008.09.17 19:23

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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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도박장에서 두둑한 배짱으로 마틴게일(곱지르기) 전략을 종종 써먹었다.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판돈을 전부 먹고 뒷면이 나오면 몽땅 잃는 게임에서 이기는 확실한 방법은 뒷면이 나올 때마다 판돈을 두 배씩 올리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 앞면이 나오면 돈을 먹을 수 있지만, 1만원짜리로 시작한 판돈은 10번째 판이면 512만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기회는 무궁무진하지만 판돈을 못 대는 순간 쪽박을 차게 된다. 카사노바는 결국 젊고 돈 많은 수녀였던 정부의 돈을 모두 날렸고, 그와 결혼해 수녀원에서 도망치려던 수녀의 꿈도 조각났다.

1980년대 월가의 황제로 군림했던 마이클 밀컨은 다양한 정크본드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매수해 두면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해 정크본드 펀드로 떼돈을 벌었다. 정크본드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한 채권으로 금리가 높지만 부도 위험도 커 사람들이 꺼렸다. 밀컨은 채권 발행 기업이 파산해 하나 또는 두세 개의 정크본드가 휴지가 된다고 해도, 나머지 보유채권에서 나오는 높은 이자소득이 그 손실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고 유인했다. 잘나가던 밀컨은 경기가 침체되자 정크본드를 발행한 기업 가운데 다수가 파산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

미국 투자은행의 몰락은 완벽한 부의 창출 시스템으로 숭앙돼 온 미국형 자유방임적 금융자본주의의 결함을 드러냈다. 금융위기는 유한한 인간의 무한한 탐욕 때문에 스스로 잉태된다. ‘고위험-고수익’을 최대한 떠안으면서 위험을 전가·우회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공학의 천재들은 첨단기법으로 위험을 분산시켜 ‘위험 제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카사노바식 한탕주의와 밀컨의 공짜 점심 심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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