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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22 21:05 수정 : 2008.10.22 21:05

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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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가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사건으로 꼽힌다. 쿠바에 옛 소련의 탄도미사일 발사대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시작된 13일 동안의 위기 때, 미국과 소련은 여러 차례 최후통첩성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양쪽 군부는 각기 강경노선을 주장하며 지도부를 압박했다. 임박한 듯했던 전쟁을 피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양쪽 지도자의 경험과 판단이 큰 몫을 했다.

흐루쇼프(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개인 편지에서 전쟁에 대한 깊은 혐오를 드러냈다. “전 두 번 참전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전쟁은 도시와 마을을 깔아뭉개고, 어느 곳이든 죽음과 파괴를 남길 때만 종식됩니다. … 당신과 저는 지금 전쟁의 매듭을 묶은 실의 끝자락을 잡아당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게 잡아당길수록 그 매듭은 더욱 엉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케네디도 1차 세계대전에서 교훈을 찾았다. 그는 그해 막 출간된 바버라 투크먼의 <8월의 포성>을 읽었고, 쿠바 위기 내내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1914년 8월 전쟁이 터졌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특히 당시 유럽 지도자들이 오해와 착각, 어리석음 때문에 상대를 밀어붙이다 전쟁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나는 누군가 이 시대에 관해 <10월의 미사일> 같은 책을 쓰게 하는, 그런 과정을 따르진 않을 거야. … 나는 필요 이상으로는 단 1인치도 러시아인들을 밀어붙이지 않을 거야.”(조너선 글로버 <휴머니티>) 실제 두 지도자는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데 온 힘을 썼던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오락가락한다. “아이엠에프 때와는 다르다”라고 낙관론을 폈다가, 금세 “그때보다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과거에서 배우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은 아닐까 걱정된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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