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30 19:50
수정 : 2008.10.3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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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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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요즘 어디 가나 경제위기 이야기다. 빚밖에 없어 화제가 됐을 정도로 재산이 없는 한 유명인사는 친구들로부터 요즘 너 같은 신세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실소했다. 주가 하락에 상심한 노인의 자살 소식 등 안타까운 사연들도 이어진다. 주식 투자인구가 1000만에 육박한다니 대한민국 가정치고 주식 때문에 속 끓이지 않는 집이 드물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자산가치가 폭락하니 2만달러에 육박하던 우리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 역시 곤두박질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나마 위로거리를 찾아보자. 일본 정부가 해마다 실시하는 국민생활의식조사를 보면 고도성장기인 70년대보다 자산 거품이 꺼진 90년대에 행복하다고 답한 이들이 많았다. 왜일까 궁금했는데 <행복의 경제학>의 저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글을 보고 이해가 됐다. 이스털린은 생활수준이 행복의 기본적 조건이 되지만,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행복이 늘어나는 것은 아님을 밝혀냈다. 같은 연령대의 사람들을 교육 수준에 따라 분류했을 때, 더 교육받은 사람이 평균적으로 더 윤택한 삶을 살고 더 행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두 그룹의 경제력 격차는 더 벌어져도 행복감의 차이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털린은 국가적 수준에서도 기본적 물질적 수준이 달성된 뒤엔 부의 증가가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함을 밝혀냈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이스털린 패러독스’로 이르고 있다.
이스털린은 이 연구를 통해 물질적 조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만족감은 단순히 자신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또는 내면화된) 생활수준의 기준과 비교함으로써 만들어지며, 그 내적 기준은 주변 사람들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에 영향을 받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거품이 꺼졌을 때 호황기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 데는 빈부 격차의 감소도 작용했을 듯하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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