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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5 21:38 수정 : 2008.11.05 21:38

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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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의 세출 예산의 요구는 총액으로 하며 산출내역과 첨부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수 있다. 비밀활동비는 다른 기관의 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 국정원법 제12조의 이런 규정은 미국 중앙정보국법에서 따온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국가안보법에 따라 1947년 9월 출범했다. 그런데도 따로 중앙정보국법을 만든 것은 비밀공작에 법적 보호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소련 진영에 첩보 조직망을 구축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선 어떤 수단도 동원하려 했다. 1949년 5월 새 법이 통과되면서, 중앙정보국은 아무런 외부 감시장치 없이 비밀활동에 돈을 쓸 수 있게 됐다. 의회의 비밀예산 승인은 모든 비밀작전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해 9월부터 중앙정보국은 수십 명의 우크라이나 망명객들을 소련 후방에 공중 침투시켰다. 2005년 비밀등급이 해제된 기밀문서는 그 결과를 간결하게 밝혔다. “소련군이 신속하게 우리 대원들을 제거했다.”

다른 곳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알바니아에선 4년 동안 200여명이, 동유럽 다른 나라에도 공작원 수백여 명이 투입됐지만 모두 실종됐거나 붙잡혔다. 한국전쟁 동안에도 수천 명이 북한과 중국 지역에 낙하됐다지만 돌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50년 한 해에만 중앙정보국 예산 5억8700만달러 가운데 4억달러가 이런 비밀공작에 들어갔다. (<잿더미의 유산> 팀 와이너)

그렇게 힘과 돈이 생겼는데도 중앙정보국은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 한국전쟁 발생, 중국 참전 등 중요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정반대의 엉뚱한 보고만 내놓았다. 정보기관에 ‘날개’를 달아준다고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생한 사례다. 기존 법도 모자라 새 법으로 권한과 기능을 크게 강화하려 하는 국정원은 어떨까? 정치공작 따위에 힘을 남용한 과거를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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