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5 19:47
수정 : 2008.12.1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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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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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목숨을 밥그릇(발우)에 의탁한다는 뜻의 탁발. 으레 불교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은 불교 이전 인도 출가사문(수행자)의 보편적인 생활과 수행 방편이었다. 그리스도교의 예수와 그 제자들도 탁발로 의식주를 해결했다. 기독교에선 13세기에 공인된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와 가르멜 수도회 등은 아예 탁발 수도회로 분류된다.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수행(관상)에 전념하던 기존의 수도원과 구별 짓기 위한 것이다. 초기엔 공동의 토지, 고정 수입, 고정 재산까지 부정했다.
물론 그 의미와 규칙을 정하는 등 엄격한 수행 방편으로 정착시킨 종교는 불교다. 부처의 제자를 뜻하는 비구도 ‘밥을 걸식하며 수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핀다파타에서 유래했다. 엄격한 규칙도 있어, 먹을 것은 걸식하여 해결할 것, 걸식할 때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말 것, 하루에 한 끼만 먹을 것, 하루에 일곱 집까지만 탁발하도록 했다.
인도의 유마거사는 “걸식은 식용을 위한 것도, 음식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교만을 버리고 하심(겸손)과 인욕(인내심)을 기르는 수행이라는 것이다. 시주자 역시 보시 공덕을 쌓게 되므로 함께 깨달음의 길로 간다고 한다. 탁발 수도회는 좀더 적극적으로 청빈 속에서 빈민 구제, 교육 사업 등 사회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생명으로 삼는다.
조계종에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선종의 전통과, 탁발 과정에서 생기는 불미스런 일을 막기 위해 1964년 금지했다. 그러나 1996년 총무원장 월주스님 때 선한 마음을 내게 하는 사회적 탁발 운동을 펼쳤다. 제자인 도법스님이 이끄는 순례단은 2004년 3월부터 지난 14일까지 전국 3만리를 걸으며, 8만여명의 시민을 만나 평화의 마음을 내게 하는 평화의 탁발을 했다. 미만한 불화의 어둠을 밝히는 무수한 작은 평화의 등불을 기대한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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