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7 19:33
수정 : 2008.12.1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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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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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2004년 6월9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관은 국회의사당까지 2.4㎞ 거리를 말이 끄는 수레에 실려 옮겨졌다. 그 뒤를 기수 없는 말이 따랐고, 말등자에는 그가 신던 부츠가 뒤쪽으로 향한 채 매달려 있었다. 1963년 11월23일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 장례식 때도 부츠만 실은 ‘블랙 잭’이라는 이름의 갈색 말이 운구 행렬을 선도했다.
이런 모습은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장례식 의전을 따른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주인 없는 말이 장례 행렬을 이끄는 의식은 4세기 유럽을 정복한 훈족의 장례 풍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뒤쪽을 향한 부츠는 ‘죽은 지도자’를 상징한다.
신발에 그런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발을 신는 것은 그 사람이 ‘자유민’이라는 상징이었다. 노예와 포로는 맨발로 다녀야 했다.
신발을 벗는 것은 그 장소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고대 히브리에서 사제들은 신발을 신고선 사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성경에서도 타오르는 나무 속에 나타난 하느님이 모세에게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말한다. 이슬람 사원 역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신발이 더러운 곳을 밟는다고 본 탓이겠다.
특히 이슬람 사회에선 신발이 ‘불명예’를 상징한다. 하인·도둑·창녀를 때릴 때나 신발을 쓰지, 자녀를 때릴 때는 신발을 들지 않는다고 한다. 2004년 사담 후세인의 몰락 당시 거리로 나선 이라크인들이 그의 동상이나 초상화를 신발로 후려친 것이라든지, 지난 14일 한 이라크 방송기자가 회견 중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것도 극도의 분노와 모욕을 표시하는 행위다. 이제 이라크에선 신발이 ‘반미’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그런 모욕을 당한 부시 대통령도 자신의 장례 행렬에 부츠를 매단 말을 앞세우도록 할까?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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