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31 20:01
수정 : 2008.12.3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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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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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대만에선 한때 ‘딸기족’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이를 일컫는 말이다. 딸기는 겉보기엔 빨갛고 아름답지만 조금만 힘을 주어도 물러져 찌그러진다. 어려서부터 부모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복하게 자란 이들 세대 역시 겉보기엔 아름답지만 힘든 일은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등 유약한 것이 딸기와 다름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신을 딸기족과 구별해 ‘산딸기족’으로 명명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지난 11월 중국 대표단의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를 정부가 강력히 진압한 것에 항의하면서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륙 출신 종신 입법의원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던 90년대 민주화 운동 세력 ‘들백합’처럼 순수하고 딸기족과 달리 강인할 것임을 다짐한다. 웹 2.0 세대인 이 젊은이들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당시 우리 젊은이들이 했던 것처럼 인터넷을 주요 소통 공간으로 삼는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 장면을 동영상으로 올리고 인터넷 토론방에서 의견을 교환하며 오프라인 시위도 꾸린다. 타이베이 자유광장에는 그들의 요구로 도배된 천막농성장도 있다. 교대로 농성장을 지키는 산딸기족들은 이 천막 안에서 때로는 자신들끼리, 때로는 시민운동 활동가들과 토론하며 민주주의를 배워 나가고 있다.
이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난 20년 사이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해 온 대만에서도 새 정부 들어 권위주의로 회귀할 위험이 보인다고 경계한다. 경찰 등 법집행기구의 폭력적 행태가 그 상징이란다. 그러기에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한 총통과 행정원장의 사과와 경찰국장 해임 및 집시법 개정 등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집회와 시위,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요구를 관철해내 자기 세대의 명예를 회복하고 대만 민주주의의 퇴행을 막아낼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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