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8 19:29
수정 : 2009.01.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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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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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87년 8월22일 오후 1시, 경남 거제 옥포관광호텔 앞에서 행진 중이던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다. 젊은 노동자 이석규씨가 날아온 최루탄에 오른쪽 가슴을 맞아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당시 이 사건으로 항의 시위가 잇따르자, 정부는 국무총리 담화 등을 통해 “좌경세력이 노동현장을 투쟁의 거점으로 삼아 학생들과 연계해 벌인 강경투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자들을 비롯해 여럿이 구속됐다. 당시 부산지역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시신 부검과 임금 협상을 위한 법률 자문을 해주다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탄생에서 사멸까지 여러 면에서 비정상적이었다. 신군부 세력의 쿠데타 뒤 설치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1980년 12월 노사관계를 해당 기업의 노동자와 사용자로만 한정하기 위해 옛 노동조합법과 옛 노동쟁의조정법에 넣은 이 조항은, 다른 비슷한 입법례를 찾기 어렵다. 영국의 대처 내각이 80년대 초 지원파업과 동정파업을 불법화한 게 그나마 비슷하다지만, 그렇다고 5공 때 한국처럼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까지 파업 조종·선동으로 처벌한 예는 없다.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개정 요구 등 나라 안팎의 압력으로 이 조항이 삭제된 뒤에도, 정부는 부칙으로 해당 조항 삭제 이전의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행위는 여전히 처벌하도록 했다. 지난해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1995년 12월의 일로 대법원에서 벌금 1500만원 형을 받은 것도 그 부칙 조항 때문이다.
그렇게 유령처럼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해온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도시 재개발 사업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정부와 한나라당이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리되면 도움 받을 길 없는 철거민들에게 상담을 해주는 것까지도 처벌의 대상이 될 게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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