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04 22:09
수정 : 2009.02.0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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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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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낮에는 부처님이요, 저녁에는 야차라’는 옛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 야크샤의 음역인 야차는 사람을 잡아먹고 해를 끼친다는 귀신이다. 겉으로나 남이 보는 데서는 부처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악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나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다.
유영철과 지존파 일당들을 연쇄살인으로 몰고 간 고리는 좌절감이었다. 좌절감은 분노와 고립을 낳았고 결국 죽거나 죽이거나 막다른 선택에 몰렸다. 그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듯했지만 내면은 늘 불안한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달리 강호순의 범행 동기는 뚜렷이 쾌락을 지향하고 있다. 다른 연쇄살인범들과 구분되는 점은 살인마와 자상한 아버지의 완벽한 공존이다. 마치 모드 전환되는 전자기기처럼 두 인격체가 한 인간에게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범죄만 빼면 이상 징후를 찾아볼 수 없는 정상적인 모습이다. 사이코패스가 던지는 가장 큰 두려움이 바로 식별 불가능성으로, 일본의 범죄심리학자인 니시무라 박사는 ‘정장 차림의 뱀’이라고 표현했다.
사이코패스가 유전적으로 태어나는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내적 갈등이 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누구나 이중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 지킬앤하이드 증후군이 있는데, 엄격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일수록 증세가 깊다고 한다. 완벽해 보이고자 했던 지킬 박사는 마침내 실험실에서 자신을 두 인격체로 분리할 수 있는 묘약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악의 위력을 만만하게 보고 자신의 이중성에서 오는 긴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욕구는 결국 파멸로 귀결됐다. 지킬 박사가 어떤 인간도 완벽할 수 없으며 누구나 어두운 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포용했더라면 하이드에 지배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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