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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8 19:58 수정 : 2009.02.18 19:58

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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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보급되고 아파트가 살림집의 대세를 이루면서 맨 먼저 사라진 것이 큰 옹기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옹기는 흔하디흔한 생활용기였다. 우리 전통가옥은 대부분 부엌과 가까운 바깥 높직한 곳에 장독대를 둔다. 장독대에 그 집의 웬만한 세간붙이가 다 얹혀 있는데, 물은 물론이고 간장과 된장 고추장 김치와 같은 저장식품은 모두 옹기에 담아 보관했다. 시골집을 떠올리면 석류나무와 맷돌이 어우러진 장독대 풍경이 선하다.

옹기는 찰기 있는 흙에 유약인 잿물을 발라 초벌구이 없이 구워낸 것으로 자기보다 가벼워 다루기 쉽고 큰 것도 만들기 쉽다. 투박하지만 열에 강하고 값이 싸서 사랑을 받았다. 1200도 이상으로 굽는 과정에서 공기는 통과시키지만 물은 통과시키지 않을 정도로 작은 미세기공이 생겨 ‘숨쉬는 그릇’이라고 한다. 공기가 통해 저장된 음식물을 부패하지 않고 잘 익게 한다. 우리나라 전통음식은 거의 모두 발효식품인데, 발효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옹기가 있었던 덕분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아호가 옹기로 그 이름을 따 옹기장학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에서 옹기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5가작통법 등의 무자비한 박해를 피해 산으로 숨어든 신자들은 대부분 옹기나 숯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깊은 산속에서 점점이 비쳐나오는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의 새터, 숯 굽는 마을 숯골 등은 대개 과거 교우촌이었다. 순교자 집안의 김 추기경 부모도 옹기장사를 했다.

옹기장수는 등짐 진 옹기만큼이나 삶의 무게를 이고 살았지만, 옹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 모두 담았던 삶의 질그릇이었다. 추기경 10년째에 피정을 가면서 김 추기경은 귀족의식이 배어 있지 않은지 반성하겠다고 했다. 추기경보다 질그릇 같은 옹기로 기억되기를 바란 듯하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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