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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9 21:37 수정 : 2009.02.19 21:37

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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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한자릿수로 추락하고 소속 정당인 자민당 의원들한테 사임 압력을 받는 처지로 내몰렸다. 경제난에 그 자신의 끊임없는 실언, 각료들의 추태 등 그의 지지율 하락 사유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집권 5개월 만의 날개 없는 추락에 대해 우리나라의 한 기업체 대표이사는 국민과 교감할 능력이 없는 총리의 당연한 결과 아니냐고 지적했다. 아소는 익히 알려졌듯 아소광업의 후계자다. 태평양전쟁에 부역해 아소광업을 일본 굴지의 기업으로 키운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땅에 발을 딛고 다녀서는 안 된다며 말을 타게 했고, 미천한 일반인들의 자식들과 함께 공부시킬 수 없다며 자기 자식만을 위한 학생 4명의 미니학교를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왕자보다 더한 왕자로 큰 아소가 일반 국민과 공감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민심이반의 근본 이유이리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문제는 그의 공감능력 부족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1939년에서 45년 사이 1만2000여 조선인들이 아소탄광에서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시달렸음이 각종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전쟁 말기엔 외국인 포로까지 강제노역에 투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러나 아소 총리는 일본 후생성이 지난 연말 아소광업이 포로 300여명을 강제노역시켰다는 문서를 공개하고 나서야 겨우 그 사실을 시인했다. 자신은 당시 너무 어려서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핑계를 댔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의 말은 없었다.

그러나 일제 때의 강제노역 문제를 연구해 온 연구자들은 1975년 아소시멘트의 사장으로서 <아소 100년사> 발간을 주관했던 그가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는 “일본 광원들이 징집돼 전장으로 나간 뒤 조선 노동자와 중국인 죄수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고 기록됐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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