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25 20:53
수정 : 2009.02.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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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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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황새결송>은 조선 후기 구전설화를 정리한 한글 단편소설이다. ‘결송’이 소송에 대한 확정판결이니, 곧 ‘황새의 판결’이다.
“경상도 안동의 한 부자가 송사에 휘말렸는데, 미리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친 상대에게 져 재산을 뺏기게 됐다. 기가 막힌 부자가 최후진술에서 우화에 빗대 억울함을 호소한다. ‘꾀꼬리·뻐꾸기·따오기가 서로 자기가 우는 소리가 좋다고 다투다가 황새에게 판결을 맡겼다. 가장 처지는 따오기가 미리 황새를 찾아가 곤충 먹이를 바치며 다음날 송사에서 자신에게 ‘아래 하’(下)자를 ‘윗 상’(上)자로 뒤집어 주도록 부탁했다. 재판 날 황새는 차례로 노래를 들은 뒤 따오기가 제일 낫다는 엉터리 판결을 내렸다.’ 이야기를 들은 판관은 아무 말도 못했다.”
중국 명·청 때 법률이 늘어나고 복잡해지면서 유교 경전과 문학만 익힌 지방관 대신 사설 법률 참모인 형조비장이 사실상 재판관 구실을 했다. 그들은 병풍 뒤에서 판관인 지방관에게 쪽지나 헛기침 등으로 신호를 보내 소송을 좌지우지했다. 그 시절 얘기다.
한 도둑이 겁탈을 하다가 붙잡혔다. 그 가족이 형조비장한테 뇌물을 주고 선처를 부탁했다. 형조비장은 소장 가운데 ‘대문으로 들어가 …’라는 뜻의 ‘대문이입’(大門而入)에 점 하나를 찍어 ‘견문이입’(犬門而入)으로 고쳤다. 재판에서 비장은 “‘개구멍으로 들어가 …’라고 했으니 절도에 해당하지, 겁탈은 아니다. 개구멍을 뚫고 겁탈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판결했다.(황밍허 <법정의 역사>)
지난해, 촛불집회 관련 사건에서 법원 고위층이 판사들에게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 대신 검찰의 보강수사와 영장 재청구가 쉬운 ‘소명 부족’으로 바꾸도록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즉심에서 벌금 대신 구류를 선고하라는 주문이 있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실이라면, 그 옛날 형조비장과 비슷한 행태 아닌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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