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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4 18:50 수정 : 2009.03.04 19:13

정영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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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라쇼몽’은 인간의 인식과 실제 사이의 거리를 묻는 작품이다. 1951년 베니스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영화로, 숲속에서 살해된 사무라이의 원혼과 그의 아내·산적·나무꾼이 이 사건에 대해 내놓은 진술은 각자의 처지와 생각에 따라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이미 죽어 귀신이 된 사무라이조차 낯을 세우려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구로사와 감독은 “인간은 자신에게도 정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진실은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축소되고 은폐될 수 있다. 원작자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이를 영화로 만든 구로사와 감독은 인간의 자기중심적 주관성이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본성을 지적하고, 진실에 대한 겸허함을 말하고자 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로 둔갑한 ‘전여옥 실랑이’ 사건처럼, 사안은 단순한데 부풀려진 전언으로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 잦아졌다. 심오한 라쇼몽의 문제제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진실에 근접해야 할 언론이 의도적인 비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에서 저항신문인 <전투>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알베르 카뮈는 신문기사의 몇 프로가 사실을 담보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편향돼 해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자는 기발한 제안을 했다.

“우리는 소유주의 정책과 관심과 특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문서를 갖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문서도 갖게 될 것이다. 소유주의 관심과 편견, 변덕은 x, 저널리스트의 편견과 변덕과 개인적 관심은 y다. x×y=z이고, z는 기사에 포함된 예상된 진실의 양이다.”

소유주가 절반의 진실에 관심 있고 기자가 반쪽의 진실만 전하면 보도되는 진실의 함량은 25%라는 식이다. 이 공식을 적용하면 한국 사회의 ‘조종당하는 언론’에 대해 명료한 관점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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