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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9 19:13 수정 : 2009.03.19 19:13

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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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는 궁궐이나 관공서 등 공공기관 소유인 공노비, 양반 사대부의 재산이었던 사노비로 나뉜다. 관청이건 사대부 집이건 안에서 사는 솔거노비, 밖에서 사는 외거노비로도 나뉜다. 또 잡역을 제공하느냐 아니면 돈이나 상품을 바치느냐에 따라 입역 노비 혹은 납공 노비로 나뉘었다. 주로 솔거노비는 노역을, 외거노비는 납공을 제공했다.

노비는 세습이다 보니 으레 운명으로 타고났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자발적 노비도 적지 않았다. 귀족 양민 천민 가운데 군역이나 조세 대상인 양민들이 제 발로 권문세족의 집안에 종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경우를 투탁 노비라고 하는데, 투탁은 중국 한나라 때로부터 고려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신분사회에선 어디서나 나타났다.

원인은 대개 권력의 수탈이었다. 굶어 죽느니 종살이나 하겠다는 것이었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져, 지방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하고, 토호들이 발호할 때 투탁 노비는 많아졌다. 전정 군정 환정 등 3정의 문란이 극심했던 조선 후기는 대표적이다. 군역을 피하려면 양반이나 노비가 되어야 하는데, 양민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노비였다.

노비의 증가는 조정으로선 불행한 일이었다. 세원 감소를 뜻하기 때문이다. 득 보는 건 세금 걱정 없이 재산만 늘리는 권문세족뿐이었다. 그래서 조정과 권문세족은 노비 문제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조정은 노비를 줄여 양민을 늘려야 했고, 권문세족은 이를 막아야 했다. 부모 중 한 사람만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이 되는 일천즉천법 대신 모친만 양민이면 자식도 양민이 되는 노비종모법은 현종 때 발의됐지만, 30여년 뒤인 숙종 때에나 확정됐다.

한 연예인의 죽음을 계기로, 돈과 인기를 위한 투탁이 집중조명을 받는다. 그러나 그게 어디 연예계뿐일까. 자리를 위해 양심을 팔아먹는 권력기구와 공직자는 투탁 노비가 아니고 무얼까.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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