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23 19:13
수정 : 2009.03.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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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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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고대 로마의 살생부(Proscription lists)는 정치적 숙청의 수단이었다. 기원전 82년, 개혁파와의 내전에서 이긴 원로원파의 독재관 술라는 로마에 입성하자 ‘국가의 적’이라며 반대파 1600여명의 명단을 도시 한복판의 광장 포룸 로마눔의 흰색 서판에 내걸었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사람은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국가의 법적 보호에서 배제됐다. 누구든 그를 죽여도 처벌을 받지 않고, 그 재산도 몰수당했다. 범법자의 머리를 들고 오는 사람은 노비 둘을 살 수 있는 1200데나리우스를 보상금으로 받았다.
국가가 사적 살인과 약탈을 공인해준 셈이었지만, 따로 경찰력이 없었던 로마에선 반대파를 제거하는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술라로선 내전으로 고갈된 국가 재정을 벌충하기 위해서라도 범법자들의 재산이 필요했다.
기원전 43년, 제2차 삼두정의 옥타비아누스·안토니우스·레피두스가 살생부를 되살린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브루투스·카시우스 연합군과 맞서고 있던 이들 세 거두는 키케로 등 정적들도 제거해야 했지만, 자신들이 거느린 60여개 군단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살생부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술라 때는 9천여명까지 늘어났다고 하고, 제2차 삼두정 때도 애초 명단 2300여명보다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살생부에는 정적들 말고 안토니우스의 삼촌, 레피두스의 동생, 옥타비아누스의 의부 등도 있었다. 세 거두가 이를 묵인한 데는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있었겠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나중에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돈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름이 여야 없이 여럿 오르내리고 있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다. 마땅히 엄하게 척결해야 할 비리다. 다만, 반대세력 공격 따위 정치적 목적에 활용하려는 유혹에는 빠지지 말아야 한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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