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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1 21:01 수정 : 2009.04.01 21:01

곽병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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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유대교인 격리 거주지)의 말뿌리는 절연장(絶緣狀)이라는 뜻의 히브리어(get)다. 다른 종교, 다른 민족과 섞이기를 꺼려 온 유대교인의 전통이 오히려 자신을 격리시키는 언어와 제도로 이용된 셈이다.

유대교인 격리의 시초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교류를 금지한 1178년 라데라노 공의회 결정이었다. 울타리까지 쳐서 감금하다시피 한 것은 14세기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면서부터였다. 병균을 퍼뜨린 장본인으로 의심받았던 것이다. 게토란 명칭은 그 후 1555년 로마에 설치되면서 일반화됐다. 2차대전 때 나치는 종교적 격리를 인종적 격리로 확장시켰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통해 이어 나갔다. 수도 요하네스버그 남서쪽 1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흑인 거주지역 소웨토는 그 산물이었다.

자신을 가뒀던 분리장벽을, 팔레스타인인 격리에 활용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이었다. 테러 방지를 핑계로 2002년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을 에워싸는 높이 8m, 총연장 790㎞의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가 해체를 권고하고 유엔 총회는 결의안까지 채택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장벽도 유명하다. 1969년 신교도의 생킬 로드와 구교도의 폴스 로드 지역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처음 설치된 이래, 벨파스트 곳곳엔 비슷한 장벽이 세워졌다. 2002년 쇼트스트랜드 구역에서 충돌이 재연하자, 경찰은 장벽의 높이를 9.9m로, 3.3m나 높이기도 했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은 2007년 치안 확보를 이유로 바그다드의 수니파와 시아파 거주지를 분리하는 5㎞ 장벽을 설치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정부는 최근 빈민가의 확산을 막는다며 장벽을 쌓고 있다. 계층 간 격리다. 우리도 임금·교육·의료 등 모든 부문에서 격차 사회로 급속히 이동한다. 심적 분리장벽은 이미 높이 솟았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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