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20 21:00
수정 : 2009.04.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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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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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조세 전문가들은 세금을 이념 논쟁의 수단으로 삼는 걸 꺼린다. 세금 문제를 논할 때는 효율성이나 형평성, 그리고 편의성 등 조세 논리로 접근해야지 정치적 이해가 개입되면 조세제도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0년 초대 재무부 세제실장을 역임한 김용진씨는 “세금은 곧 정치다”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어떤 계층한테서 얼마만큼의 세금을 거둘지를 저울질하고, 이를 입법화하는 국회 활동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조세제도를 보면, 그 나라가 지향하는 정치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의 미국과 이명박의 한국을 비교해보면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일정 소득 이상 계층에 대한 세금을 중과하겠다고 밝힌 반면, 우리는 자산 계층의 세금 부담을 완화해주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는 “계급 전쟁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방침은 이명박 정부의 철학에 비춰보면 당연한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는 조세제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는 조세 전문가들의 주장이나 이 정부의 지지 기반인 자산 계층의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사이, 그리고 여당 내에서도 혼선을 빚고 있다. 이를 두고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고도의 정치 행위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4·29 재·보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서민도 챙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방안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정책 혼선을 조장한 셈이 된다.
이 정부의 철학에 맞는 ‘세금 정치’는 양도세 완화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홍 대표는 이를 다시 한 번 뒤집어 실제로는 그러지도 않을 거면서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적 효과까지 노렸다. 참 못된 ‘세금 정치’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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