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11 22:37
수정 : 2009.05.1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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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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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네팔은 인도와 중국을 가른 히말라야 산맥 한가운데에 놓인 나라다. 덩치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서 그렇지 면적(15만㎢)은 남한(10만㎢)보다 넓다. 이곳저곳 흩어져 사는 고산 부족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구가 2300만명이다. 그나마 예상에 가까운 사실이 세계적 빈국 가운데 하나라는 것 정도일까?
‘산쿠와사브하라’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오지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자동차로 18시간 걸린다. 대부분 산악지형이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 안내 사이트는 빨리 걸어서 나흘 거리라고 적고 있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이 지역에서 농사는 어렵지만, ‘알로’라는 다년생 쐐기풀은 많이 난다. 가난한 주민들은 겨울이면 모여서 이 풀을 삶고 껍질을 벗겨 실을 뽑는다. 이 실을 삼아서 베틀로 천을 짠다. 몇 달을 짜고, 며칠을 걸어간 시장에서 천은 곡식이 된다. 조상의 조상 때부터 이렇게 살았다.
지난 9일은 세계 공정무역의 날이었다. 서울 덕수궁 돌담길 옆 행사장 한 귀퉁이엔 그 알로 천으로 만든 옷과 손가방들이 놓여 있었다. 네팔이 수출로 버는 돈의 10%는 이 공정무역에 나온다. 알로 천, 커피, 면제품, 수공예품 등을 생산하는 주민 3만여명이 이를 통해 생계를 잇는다.
생산자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공정무역은 ‘돕자’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요즘엔 많은 물건들이 소비자들에게 당당히 선택받는다. 경제가 어렵다지만 공정무역 제품들은 매출이 쑥쑥 늘고 있다. 천연 염료만 쓰는 알로 천을 쓰면 아토피 걱정이 없고, 필리핀 농가에서 온 마스코바도 설탕엔 인공 첨가물이 전혀 없다. 아르헨티나 올리브기름은 시골 참기름 짜듯이 순수 압착으로 낸 기름을 담았다. 소비자들의 ‘착한 소비’ 가치에만 기댈 이유가 없다. 좋은 제품 자체가 가치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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