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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1 22:15 수정 : 2009.05.21 22:15

권태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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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스리랑카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타밀호랑이·LTTE)가 정부군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로써 1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며 26년이나 지속된 스리랑카 내전은 끝이 났다. 그렇지만 스리랑카에 곧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는 성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타밀호랑이는 스리랑카 다수족인 싱할라족이 소수파를 차별하면서 비롯됐고, 그 차별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내전의 뿌리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있다. 19세기 유럽 선교사들이 힌두교를 신봉하는 타밀족 지역에 진출하자, 타밀족은 이에 맞서 학교와 사원을 만들고 타밀어 문학을 육성하며 민족 정체성을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 영국은 실론섬의 다수민족인 싱할라족과 소수민족인 타밀족에게 동등한 지분을 줬다. 다수파를 견제하기 위해 두 민족 사이에 갈등의 씨앗을 심는 전형적인 식민지 지배 전략이다. 독립 후 다수파인 싱할라족은 소수파를 배제한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갈등의 씨앗에 싹을 틔웠다. 싱할라족은 이것도 모자라 타밀인들이 주로 사는 동북지역에 싱할라족을 이주시키는 식민정책까지 추진했다. 타밀어 영화·잡지·서적 등이 금지됐고 싱할라어만 쓰도록 강제했다. 인도계 타밀인들에게는 시민권도 주지 않았다.

소수파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 일변도로 나가는 이런 정책은 타밀 민족주의를 자극했고, 견디다 못한 젊은이들은 총을 들었다. 1976년 독립적인 타밀족의 나라 ‘타밀엘람’ 건설을 목표로 내건 타밀호랑이가 등장했다. 엘람은 실론섬의 타밀 이름이다. 83년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섰던 타밀호랑이는 한때 실론섬의 3분의 1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테러에 의존하고 비타협으로 일관함으로써 국제적 고립을 초래해 자멸의 길을 걸었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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