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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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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죽음을 놓고 마음을 준비한다는 것, 그것을 각오한다는 것, 쓸모없는 목숨도 그것을 놓는다는 것은 아득한 저승만큼 억겁의 길을 걷는 일이다. 하물며.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아깝잖은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이순신의 마음을 이렇게 썼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이순신도 그도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다. 이순신은 그래서 견뎠고, 그는 그래서 놓았다. 지난해 2월27일, 그의 천진한 웃음을 기억한다. 보리피리 불고 소에게 풀을 먹이던 봉하마을. 청와대를 떠나 그 땅을 밟고선 그가 말했다. “하아~. 야 기분 좋다.” 그날 밤 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 문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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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뒤 봉하마을로 돌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3월 마을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누리꾼들은 이 사진을 보고 ‘멋진 노무현’이란 뜻의 ‘노간지’라는 별명을 지었다. 사진 연합 최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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