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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5 19:54 수정 : 2009.05.25 21:42

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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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놓고 마음을 준비한다는 것, 그것을 각오한다는 것, 쓸모없는 목숨도 그것을 놓는다는 것은 아득한 저승만큼 억겁의 길을 걷는 일이다. 하물며.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아깝잖은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이순신의 마음을 이렇게 썼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이순신도 그도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다. 이순신은 그래서 견뎠고, 그는 그래서 놓았다.

지난해 2월27일, 그의 천진한 웃음을 기억한다. 보리피리 불고 소에게 풀을 먹이던 봉하마을. 청와대를 떠나 그 땅을 밟고선 그가 말했다. “하아~. 야 기분 좋다.” 그날 밤 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 문구를 떠올렸다.

퇴임 뒤 봉하마을로 돌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3월 마을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누리꾼들은 이 사진을 보고 ‘멋진 노무현’이란 뜻의 ‘노간지’라는 별명을 지었다. 사진 연합 최병길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 누구는 죽어서야 자유를 얻었지만 그는 살아서 자유를 얻었다. 난 그 행복한 웃음을 축복했다. 이제 그 가난한 축복마저 거둬야 한다.

배 몇 척으로 위풍당당한 일본 함대를 향해 돌진하는 이순신처럼, 그는 늘 염원하는 백성들을 울렸다. 백성들은 그가 나아갈 때 울었고 돌아올 때 울었다. ‘무내용한’ 세상에서 통곡하는 백성들은 아직 그를 보낼 채비를 못했다. 그를 어서 보내고 또 다른 그를 맞아야 한다고도 한다. “묵묵히 깃발을 세우다가 이제 스스로 깃발이 된” 그를. 그러나 봉하마을 ‘점빵’에서 담배 하나 물던 그의 사진 한 장이 남긴 상처가 아직 깊다. 누군가는 이런 글을 인터넷에 남겼다. “뜬눈으로 맞은 새벽, 수저로 찬밥을 우겨넣었습니다. 가슴을 때렸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미워서. 사랑하고도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못한 내가 미워서.”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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