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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27 21:43 수정 : 2009.05.27 21:43

정남기 논설위원

16세기 이탈리아에 르네상스 후기를 대표하는 자코포 다 폰토르모라는 화가가 있었다. 그는 피렌체의 산로렌초 성당 벽화를 그리면서 당대의 최고봉이었던 미켈란젤로를 능가하는 대작을 그리려 했다. 작업장을 공개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11년 동안 작업을 했으나 아쉽게도 완성 직전에 숨을 거뒀다.

사후에 공개된 필생의 역작은 형편없는 졸작이었다. 비례가 전혀 맞지 않았고, 중복되는 그림투성이였다. 폐쇄된 상태에서 세부 묘사에 집착한 나머지 전체적인 구성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것이다. 한 비평가는 “이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면 관객이 미쳐버릴 것”이라고 혹평했다.

권력투쟁의 이면을 날카롭게 분석한 <권력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자신의 책에서 폰토르모의 그림을 권력의 요새에 비유했다. 권력자가 수성을 위해 자기만의 요새에 들어앉는 순간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권력자들은 대부분 위협을 느낄 때 자기 진영을 결속시키면서 요새로 물러나 안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이 경우 점점 더 작은 집단에 정보를 의존하게 되고 주변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잃게 된다. 패배의 전주곡인 셈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든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고립시키고 손쉽게 위치를 노출시켜서 공격의 표적이 된다고 지적했다. 군사전략적인 관점에서 요새의 고립성은 아무런 보호 수단이 되지 못하며, 전략적 유연성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1년 만에 ‘명박산성’이 다시 등장했다. 서울 곳곳에서 전경버스들이 요새처럼 방어선을 형성했고, 작은 촛불시위라도 일어나면 광화문 일대를 철통같이 둘러쌀 기세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를 요새에 가두는 방법으로 정치적 난국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궁금하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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