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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01 21:20 수정 : 2009.06.01 21:20

정석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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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많은 사람의 일자리 유지에 목표를 두면 결과는 심각해질 것이다. 한국 정부의 목표가 고용 보호냐? 아니면 국제경쟁력 강화냐?”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를 눈앞에 둔 1997년 12월22일,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방문한 데이비드 립턴 미국 재무부 차관은 정리해고제 수용을 강하게 압박했다. 당시 외환 상황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75억달러가 입금되더라도 연말이면 국가 부도 가능성이 반반일 정도로 다급한 상태였다. 김 당선자는 정리해고제 도입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고, 이틀 뒤인 24일 통화기금과 미국 등 G7은 연말까지 100억달러를 조기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외환위기는 중대한 한고비를 넘겼다.

이후 정리해고제는 노동계와의 긴 줄다리기 끝에 이듬해인 98년 2월14일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입법화됐다. 대상도 처음에는 부실 금융기관에만 적용하려던 것을 전 산업계로 확대했다. 정리해고제는 이처럼 외환위기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달러를 지원받기 위해 불가피하게 받아들인 것이었다. 당시 정리해고제는 “기업이 살아남으면 정리해고된 사람도 직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함께 죽는다”는 논리로 노동계를 설득해 도입됐지만, 결과는 늘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피해로 이어졌다.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곧바로 생명줄이 끊기는 것이고, 한 번 끊어진 생명줄이 다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경영난에 빠진 쌍용자동차에서 대량 정리해고를 놓고 노사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한 대치를 하고 있다. 노조의 전면 파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쪽은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있다. 회사가 살려면 노동자가 죽어야 한다는 이 부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노사가 함께 사는 길은 정말 없는 것일까. 그 길을 찾기 위한 대화조차 없는 게 더 안타깝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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