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11 21:48
수정 : 2009.06.1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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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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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슬럼프에 시달리던 박세리 선수가 최근 미국 엘피지에이 스테이트팜클래식에서 준우승을 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걸작이다. “실력 있는 후배들에게 ‘너 어쩜 그렇게 잘 치니, 어떻게 치는 거니’ 하면서 배워요. 그렇게 제가 ‘열린’ 게 비결이랄까요?” 고수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가 찾아낸 슬럼프 탈출의 최대 비결은 바로 ‘열린 자세’였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슬럼프. 사전적 의미를 보면 ‘운동경기 등에서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저조한 상태가 길게 계속되는 현상’으로 나와 있지만, 다음과 같은 정의는 더 정곡을 찌른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태이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느라고 진이 빠진 상태.’
이 때문에 슬럼프 탈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슬럼프를 인정하지 못할수록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더 어려워진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은 무조건 잘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를 인정해줘야 하며, 자신은 어떤 어려움도 겪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가장 어려운 유형이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다고 말하면 본인은 화를 낼까. 하지만 위에 언급한 슬럼프의 정의에 대통령의 요즘 모습을 대입해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그러면 슬럼프 탈출의 해답 역시 자명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다. 박세리 선수가 말한 ‘열린 자세’ 역시 새겨들을 만하다. 마음을 열고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스포츠나 국정운영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계속 공을 엉뚱한 곳으로 날리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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