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17 21:21
수정 : 2009.06.1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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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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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지리학회의 첫 여성 회원이자 여행가였던 이사벨라 비숍이 한강 탐사에 나선 것은 1894년 4월14일이었다. 5주 동안 여주, 단양, 가평 등 남한강과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보았던 풍경들을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에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 그의 기록을 읽고 있으면, 100여년 전의 아름답던 옛 한강 풍광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강의 물은 수정처럼 맑았고, 그 부서지는 물방울 조각들은 티베트의 하늘처럼 푸른 하늘로부터 내리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맑은 에메랄드빛 물결이 찔레꽃과 인동넝쿨로 장식된 바위나 아름다운 웅덩이에 있는 자갈투성이의 가장자리와 하얀 모래를 점잖게 때려댄다. 그 아름다움이란 천국의 향기와도 같았다.”
비숍이 한강을 탐사했던 비슷한 계절인 올 4월20일,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생명의 강 연구단’은 한강의 수질·생태계 등을 조사했다. 100여년 전 비숍이 작은 나룻배로 지났을 여주~양평 구간을 현장 조사한 연구단은 “금빛 모래밭이 펼쳐지고 초록 버들이 우거진 한강은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고 보고했다.
물론 지금의 한강 수질과 생태계를 100여년 전과는 비교할 수가 없고, 그때처럼 맑으리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하지만 조사단은 예상과 달리 한강의 수질이 비교적 양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강뿐 아니라 낙동강, 금강 등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전제로 내건 ‘강이 죽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살아 있는’ 강을 한사코 ‘죽었다’고 하면서 ‘살리겠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2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비숍이 다시 살아나 이명박 정부의 이런 무모함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제발 강물을 그대로 흐르게 하라. 강을 막으면 물이 썩고, 물이 썩으면 생명이 떠난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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